"LNG 9일 비축, '위험 신호'일까…저장 구조 모르면 생기는 오해"
탁병훈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3-11 15:41:10
- LNG 특성상 장기 비축 어려워…수입선 다변화·열량 규제 완화
[세계뉴스 = 탁병훈 기자]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국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의 천연가스 비축 수준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 일각에서는 “비축량이 9일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LNG(액화천연가스)의 물리적 특성과 국제 관행을 고려할 때 단순히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중동 사태 관련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LNG 비축량은 약 9일 수준으로, 원유 비축 208일분에 비해 크게 낮다”며 “일본의 약 3주분, 유럽의 약 5주분과 비교해도 부족한 수준으로 공급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기적 공급 차질에 대비해 “현물 물량 확보 등 조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에너지 전문가들은 “수치만 놓고 다른 에너지원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LNG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까지 냉각해 액체로 만든 형태로, 상온에 노출되면 다시 기체로 기화되면서 자연 손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들여온 뒤 가능한 한 빨리 사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우리나라가 법으로 정한 LNG 의무 비축일수가 약 9일인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한국은 LNG를 지상 저장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해외와의 단순 비교도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수입업자에게 법적 비축 의무가 없고, 올해 2월 중순 기준 재고량은 약 200만톤으로 지난해 전체 LNG 수입량(약 6600만톤)의 11일분 수준에 그친다. 유럽은 우리와 달리 지하 동굴 등에 기체 상태로 가스를 저장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장기 비축이 가능하다. 저장 방식 자체가 달라 ‘주(週) 단위’ 일수를 그대로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난해 LNG 수입량 4668만톤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카타르산 물량은 700만톤(14.9%) 수준이다. 나머지는 호주, 미국, 동남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조달하고 있어, 원유에 비해 중동 리스크 의존도가 낮다는 평가다.
특히 국내 LNG 열량 규제가 수입선 다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국가·가스전별로 생산되는 LNG의 열량은 차이가 나는데, 한국은 일정 범위의 열량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어 일부 저열량 가스의 도입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가스 시장에서도 전력시장과 유사한 가격 통제 장치가 도입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과거 에너지 위기 때 전력 도매가격(SMP) 상한제가 시행된 전례가 있어, 급등하는 가스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 논의가 재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시장 신호와 정책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전력과 가스 시장 모두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급 투자와 수급 안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제도 설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만큼, 단순 비축 일수 논쟁을 넘어 저장 인프라, 수입선 구조, 규제 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세계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