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대란 후폭풍… 노태악 선관위원장·허철훈 사무총장 전격 사퇴
차성민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6-05 17:15:32
- 전원 외부 전문가 진상규명위 설치 및 국정조사 등 국회 차원 조사 전면 협조 방침
[세계뉴스 = 차성민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책임을 지고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이 동시 사퇴를 선언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투표용지 대란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자 선거관리의 최종 책임자와 실무 수장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노 위원장은 5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서 대국민 사과 및 상황 브리핑을 열고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허철훈 사무총장 역시 사무처의 수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하며 지휘부 동반 책임을 공식화했다.
노 위원장은 고개를 숙이며 “지난 3일 실시된 지방선거 시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사과했다. 이어 “투표 참여로 보여주신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과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손상시켰다”며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해 선거 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참담함과 함께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참정권이라는 국민의 소중한 권리를 침해하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거듭 사과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두고 선관위 스스로도 ‘헌법상 권리 침해’ 수준의 중대 사안으로 규정한 셈이다.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선관위는 외부 인사 중심의 진상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노 위원장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진상규명위를 설치해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점, 대응 과정을 파악해 모든 결과를 소상히 밝히겠다”며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위해 위원들은 모두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 내부 인사가 아닌 전원 외부 전문가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못 박은 것은 ‘셀프 조사’에 대한 불신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회 차원의 조사에도 전면 협조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노 위원장은 “국회 국정조사 등 이번 사태에 관한 선관위 책임을 확인하는 모든 절차에 성실하게 임하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결코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추진 중인 국정조사, 청문회 등 제도적 검증 과정에서 추가적인 인적 쇄신과 제도 개선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이번 사태는 지난 3일 치러진 제9회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불거졌다. 서울 송파구, 강남구, 광진구 등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본투표 종료 전 일찌감치 바닥나면서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속출했다. 사전투표 열기와 실제 본투표 참여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투표용지 수급을 관리한 선관위의 안일한 대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선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떨어졌다”는 신고가 잇따랐음에도 신속한 보충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점, 사태 발생 직후에도 선관위가 구체적인 경위와 대책을 즉각적으로 내놓지 못한 점 등도 비판 여론을 키웠다. 일부 지역에서는 유권자들이 수십 분 이상 대기하다가 업무와 일정 등을 이유로 투표를 포기하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선거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증폭됐다.
선관위는 향후 진상규명위를 통해 투표용지 수량 산정 기준, 사전·본투표 참여율 예측 시스템, 비상 물량 확보 및 배분 매뉴얼, 현장 보고·대응 체계 등 전 과정에 걸친 문제점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제도 개선과 인적 쇄신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노 위원장과 허 사무총장의 전격 사퇴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인 만큼 향후 후임 인선 과정과 조직 개편 방향을 둘러싸고 정치권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 관리의 기본인 ‘투표 기회 보장’ 원칙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재정립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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